1.
얼마 전부터 딸은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간다. 학교 급식을 먹으면 간편하면서도 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도 애와 엄마는 동시에 자진해서 많은 불편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 급식만 피한다고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나 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가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니 그것만이라도 막아 보자는 것임과 동시에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행한 이 정부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조치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의미가 담겨있을 터이다. 참 징그럽다. 이 정부.
2.
연일 계속 되는 야간 촛불집회 참가는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 소모도 크다. 애당초 쉽게 끝낼 수 있는 싸움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핏대 세워 외쳐도 저들은 귓구멍에 말뚝을 박은 듯 요지부동이니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는 건 우리다. 물론 불필요한 소모가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 동안 진전된 것이 어디 하나 둘뿐이랴. 정부 정책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 고취와 수구언론의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한 행태에 대한 인식의 확산에서 비롯된 수구세력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 등
하지만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나발 불어대는 저들의 간교하고 비열한 공작에 의해 지겨워하는 관객들(?)의 반응과 함께 우리 측에 알게 모르게 번져가는 패배주의 혹은 무기력증도 늘어나고 있다. 나도 이제 피곤하다. 쉬고 싶다.
3.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논쟁은 예상했던 부분이다. 대치가 장기화되면 당연히 나오는 메뉴이다. 물론 ‘폭력’에 대한 개념정의가 우선이겠지만 폭력은 대부분 나쁘다. 더구나 공세적 폭력은 더욱 나쁘다.
어제 날짜(6월 30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는 한국 YMCA 사무총장이며 순천작가회의 회원인 이학영 시인이 팔에 골절상을 당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실렸다. 집회참가자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 폭력행사를 막는 완충 역할로서 경찰의 진입 시에 팔짱을 끼고 누운 채 ‘평화 저항’을 하던 그들을 경찰은 막무가내로 짓밟고, 곤봉으로 내려치며, 방패로 찍어 수많은 회원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로 이 정부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었다.
폭력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또 다른 폭력을 선택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누운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이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야수다.
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마침내 촛불을 들었다. 주최측도 이렇게 대대적인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시국미사는 대성공이었던 것 같다.
스님도 함께 참석한 미사 도중 성가 대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소리 높여 불렀다. 안타깝게도 내가 참석했을 때는 그 감동의 시간이 흐른 후였지만, 일찍 참가했던 이들로부터 전해들은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청와대방면이 아닌 반대방향으로의 시가행진에 이어 사제분들 중 일부는 단식에 들어갔다. 천막 안에서 신부님들과 스님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중앙일보라는 삼류소설 창작소에 기생하는 자들의 단말마적 발악만 제외하고, 공안당국과 보수세력, 수구언론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친 심정일 거다. 겨우겨우 꺼뜨려가는 촛불이 다시 살아났으니 이게 웬 날벼락이랴 싶을 거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줄줄이 대형 집회들이 예고되어 있다. 노동자들, 양심적 개신교계, 불교계에 이어 통합 집회까지. 숫자가 힘인 줄 아는 저들에게는 끔찍한 일일 거다. 자, 이제는 너희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사실을 실감하겠지? 이게 민심이고, 이게 순리라는 거다.
5.
왜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냐고 지인이 묻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광우병 쇠고기 먹는 것이 싫기 때문이고, 이명박과 그 주변인들의 천박하고 부도덕한 처세가 싫기 때문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소수 상류층에게 가져다 바치려는 반민중적인 정책들의 집행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것이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대통령을 뽑은 우리 국민들은 더욱 혹독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살벌한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저 사람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까, 저 사람은 가족도 이웃도 없이 사는 사람일까 하고.
6.
이제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어둡고 긴(사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엄청 길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조급증 때문일 수도 있다.) 터널의 끝 말이다.
저들은 지금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반대를 위한 반대의견들도 일단 저질러 놓고 나면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과거의 성공경험(저들만의 판단에 의한)이 저들을 뼈저린 절망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궁금하다. 과연 저들은 천길 벼랑의 직전에서라도 귀를 열 수 있을까? 눈을 뜨고 현실을 직면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예고된 추락을 피할 수는 있을까?
by 산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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